야생화 꽃 그리고....情

[스크랩] 초록바다 `모비딕` (글:들풍)

차랑재 2006. 10. 20. 17:24

양평 가는 길에선 늘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국도를 타고 팔당대교를 건너서면서부터
시작되는 물줄기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가, 양수대교를 건너 두물머리에 서서 좌우를
둘러보면 탁 트인 수면이 망망하게 이어져 있어 마치 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장맛비를 오래 맞으면 지루하듯이 서서히 물풍경에 식상해질 때쯤이면
국수리를 지나게 된다. 오르막길을 타고 조금 가니 산 아래 길가에 하얀 마스트가 보이고
그 뒤로 유리 온실이 있다. 모비딕이란 이색 카페 겸 야생화 식물원이며, 유리 온실 내에
포석정이란 차실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사진 # 전경(잠시 화니님 작)>


하필이면 상호가 왜 모비딕일까? 모비딕은 멜빌의 소설 백경에 나오는 흰고래이니, 흰
고래 뱃속에서 식사를 하면 분위기 있다는 건가, 아니면? 무슨 사연이 있겠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올라가려니 붉고 환한 들꽃들이 눈을 끈다. 한련화가 커다란 
바위 위에서 패션쇼를 하는지 현란한 색상의 옷을 입고 주욱 늘어섰다. 그 옆의 창문에선
고래의 눈동자인가 푸른 담쟁이덩굴로 가린 얼굴에 까만 눈만 드러내고서 밖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 # 한련화 >


<사진 # 26-3 담쟁이덩굴로 덮힌 창문>

예사롭지 않은 야생화 분위기에 우리는 스르르 고래 뱃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고래 뱃속
에는 벼라별 것들이 다 들어 있다. 첫번째 뱃속에는 테라코타와 다구 및 접시 등의
도자기들이 아기자기하게 진열되어 있고, 2~7번째 뱃속에는 여러 개의 칸들로 구분되어
있는데 식사를 하는 곳이다. 마지막 뱃속의 창가에 서니 돌축대 밑에 무늬둥굴레, 잔대,
섬초롱꽃, 기린초, 금낭화, 나리꽃, 도라지, 붓꽃, 금낭화, 큰제비고깔, 매미꽃, 붉은
바위취, 제비꽃, 돌나물, 족도리풀 등이 자리를 잡고 앉아 오히려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고래 뱃속에는 참으로 희한한 물건들이 다 있구나.


<사진 # 26-12 실내 창가>


[사진 # 창가에서(잠시 화니님 작)]


감탄을 하고 있는데 키가 크고 검은 얼굴의 사나이가 인사를 한다. 쥔장이다. 그는 이십
여년 동안 외양어선을 타다가 퇴직한 뒤에 지금의 공간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모비딕이란 특이한 상호를 쓴 것은 그가 바다 위에서 일을 하면서 꿈 꾸던 또 하나의
초록바다였구나! 얘기를 듣다 보니 카페와 식물원 조성에 관한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이해된다.

고래 뱃속의 뒷문을 통해 나와 보니 길은 유리온실로 이어진다. 길가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각종 야생화들로 가득하다. 온실로 올라가는 경사지에는 은방울꽃, 동자꽃, 매발톱,
애기나리, 윤판나물, 흰금낭화, 할미꽃, 용머리, 까치수영, 구름미나리아재비, 타래난초,
한라구절초, 긴산꼬리풀, 오이풀, 용담, 노루귀, 무늬둥굴레, 돌단풍 등이 바다 같이
길게 펼쳐져 있다. 축대 아래 바닥에도 아주가, 좀씀바귀, 꼬리풀 등 키 작은 야생화들이
즐비하다.


<사진 # 26-1 >

계단을 따라 온실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작은 석벽이 나타나고 그 앞은 넓은 평지다.
석벽은 오랜 풍화작용으로 둥글고 매끈하게 닦여져 있고, 석벽 아래엔 가로 세로로 크고
작은 암석들이 놓여져 있는데, 거기에 야생화 한 무리가 멋진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바위취가 기본 배경으로 깔려 있고, 섬초롱꽃, 매발톱, 삼지구엽초, 윤판나물, 처녀치마,
물매화 등이 바위 사이사이에서 뽐을 내며, 바위틈에는 애기기린초, 바위떡풀, 바위솔,
일엽초 등 깊은 숲속 식물들이 자라나 있어 귀한 경관을 보이는 것이다. 

야생화들은 화단에 가지런히 심어져 있으면 단조롭다. 조경의 기본 소재인 돌,나무, 물과
어우러질 때에 한없이 반짝거리며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온다. 이곳은 모비딕의 백미다.
교육장으로 활용하면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사진 # 26-2 >

유리온실에 들어서니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천정이 매우 높아 적어도 3층 높이는
되겠어서 통풍도 잘 되겠다. 아무리 우리나라 야생화라 할지라도 남부지방의 야생화는
양평의 혹한 추위를 이겨낼 재간이 없다. 그들은 적절히 보온대책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온실 내 정면에는 포석정이라 이름한 물굽이가 있고, 그 안에는 데크를 설치하고 차실을
꾸며 놓았다.

포석정(鮑石亭)은 경주시 배동에 있는 남산의 서쪽에 있는 석구(石溝)로써 사적 제1호다.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927년 경애왕이 왕비·궁녀·신하들과 놀다가 견훤의
습격을 받아 죽은 곳이기도 하다. 포석정은 시냇물을 끌어들여 물고기 모양을 따라 만든
수구(水溝)에 흐르게 하고,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음풍농월하던 곳이다.

차실에 앉아 왕처럼 고래 뱃속 포석정의 물굽이를 돌아보니, 애기부들, 노랑꽃창포,
기린초 등이 신하처럼 시립해 있고, 붉은 수련, 노랑어리연꽃, 리시마키아, 해국 등이
시녀처럼 부복해 있다.

경주 포석정엔 나무들만 있으나 고래뱃속포석정(鯨臟鮑石亭)엔 야생화들이 가득하다. 이왕
놀 거면 여기서 놀리라.
 

<사진 # 26-5 고래뱃속포석정(鯨臟鮑石亭) >

이젠 그만 놀고 나가야겠다. 밖으로 나가는 돌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데 발치에 노란 빛이
힐끗 스친다. 리시마키아가 돌 사이사이에서 기어다니며 밝은 노랑 빛을 쏘아내고 있는
양이 돌과 잘 어울린다.

리시마키아는 유럽 및 동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여러해살이풀인데, 추위에도 강하고 꽃도
앙징맞고 예쁘며, 특히 길게 자라는 줄기가 고와서 여러모로 잘 쓰이는 야생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같은 앵초과에 속하는 야생화에 좀가지풀이 있다. 리시마키아하고
비슷한 점이 있기는 해도 다른 점이 좀 보이는 식물이다. 이 둘이 곧잘 혼동이 되곤
하는데 엄연히 다르니 구분해서 쓸 일이다.

우선, 두 식물이 줄기가 길게 벋고,꽃이 노오라며, 잎도 동글한 건 비슷하나, 좀가지풀은
줄기의 굵기가 거의 꿀풀 정도여서 리시마키아의 가는 줄기와는 구별이 되고, 줄기도
여건이 되면 아무데로나 길게 뻗는 게 아니라 방사상으로 뻗는다. 꽃도 좀가지풀이 단정
한 데 비해, 리시마키아는 꽃잎에 주름이 많다. 또한, 좀가지풀은 꽃이 잎 겨드랑이에서
나와 배시시 옆을 보고 드물게 피는데, 리시마키아는 꽃이 중앙에서 하늘 방향으로 곧추
서서 다닥다닥 피는 것이다.


<사진 # 26-4  돌 계단>

온실을 나와 산길로 접어든다. 갑자기 너른 잎에서 긴 꽃대가 올라와 파꽃처럼 피어 있는
야생화 한 무리가 눈길을 끈다. 산마늘이다.

산마늘은 울릉도와 남부.중부 지방의 깊은 산 숲속 에서 자라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다. 산마늘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나물이어서 모비딕 식단엔 주된 메뉴로
활용하고 있다. 잎은 봄에 쌈으로 먹고, 줄기는 짱아찌를 담가 먹으며, 뿌리는 살짝 튀겨
먹기도 한다. 전초로 술을 담그면 빛깔도 아주 좋고 건강에도 좋다.

야생화 감상이나 건강식품으로 기르면 일석이조인 야생화다.


<사진 # 26-10 산마늘>

오솔길은 여기나 저기나 정겹다. 그 정겨운 길에 야생화가 좌우로 가득하다면 정취가
묻어난다. 그 길에, 너른 산지를 배경으로 비비추 군락, 옥잠화 군락, 노루귀 군락,
복수초 군락, 벌개미취 군락, 구절초 군락, 매발톱 군락, 할미꽃 군락, 패랭이 군락,
양지꽃 군락, 용머리 군락, 까치수영 군락, 자란 군락, 오이풀 군락 등이 봄부터 가을
까지 차레로 꽃을 피워낸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가슴 벅차고 뿌듯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 길을 한번 걸어보시라. 


<사진 # 26-9 야생화 오솔길>

<사진 # 26-11 야생화 오솔길>

산길을 내려오자니 저 아래로 연못이 보인다. 다가가니 연못에는 노랑꽃창포와 애기부들이 풍성하고 못 안에는 노랑어리연꽃과 수련이 두둥실 떠있다. 가장자리 돌 사이에는
좀씀바귀의 노란 꽃이 하늘거리고 장독대 앞에는 옥잠화가 한아름이다. 햇살은 따사롭다.
참으로 평화로운 정경이다.     


<사진 # 26-6 연못가>

<사진 # 26-7 연못가>

그러니까 여기 '모비딕'은 흰고래 뱃속을 빌려 저 망망한 대양에서의 기억을 반추해내며,
오랜 동안 목말라 하고 그리던 대지에서의 삶을 펼쳐보이는 평화로운 동산이구나.
고기떼를 좇아 나흘밤을 내달리던 배를 이제는 샛바람에 돛을 올려 복수초를 좇고,
하늬바람따라 키를 돌려 동자꽃을 피우며, 마파람에 맞추어 구절초를 낚고, 높바람에
맞추어 온실문을 닫는다. 부는 바람에 세월이 암만 가도 나는 흰고래를 잡으리라.       





@@@ 필요사진;1.한련화 2.족도리풀 3.윤판나물 4.처녀치마
             5.리시마키아(좀가지풀) 6.해국 7.산마늘 8.용머리@@@
@@@ 주제사진;26-1 @@@


출처 : 김포 들꽃풍경
글쓴이 : 콩누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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